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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하루살이

불침번

와, 가을모기 극성이 대단하네...

잠결에 웽 하는 모기소리에

처음엔 이불을 뒤집어 썼지만

이내 답답해 져 머리를 다시 내민다.

또 웽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다 손으로 목덜미께를 탁 친다.

턱밑이 간질간질하다.

가만이 있으니 발가락도 욱씬거린다.

아니 여기만이 아니라 팔뚝과 허벅지도 따끔거린다.

이놈이 몇군데나 물은겨???

일어나 멍한 정신으로 여기저기 물린데를 세어본다.

턱에 2방, 양 팔뚝에 각 1방, 양 허벅지도 각 1방, 손가락 1방

도합 10방 정도 물린것 같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호랭이연고(tiger balm) 바르고 누우니

이놈들 괘씸한 생각이 든다.

모기사냥을 해야겠다.

마눌을 깨웠다...ㅎㅎ

여보야 아프다. 복수 좀 해주라.

 

가만가만히 주위를 정돈하고

정신을 집중하고

똥그라니 큰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두 손으로 포위망을 형성하고

짝 하니 손을 마주친다.

일단 한마리 잡고는 이놈이 범인은 아니란다.

빨아 먹은 피가 별로 없단다.

 

살금살금 여기저기 둘러보더니

쇼파 근처의 벽 모서리로 비호같이 몸을 날린다.

탁 하니 한마리를 더 해결했다.

손바닥에 제법 혈흔이 보인다.

 

역시 우리 마눌이 최고야.

아직도 먹이를 노리는 야수와 같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 마눌을 옆에 하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다.

 

여보 불침번 잘 서...ㅎㅎ

 

벌써 십여년이 흘렀다.

작은놈 임신하고 고생도 많았다.

5개월정도 지나서부터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인가 병원에서 아버님도 잠깐 들어오시란다.

큰 병원을 한번 가 보시란다.

전치태반이라나?

원래 태반은 좌측에 있어야 하는데

아래로 내려와 산도를 막고 그 위에 태아가 눌러

태반이 손상되고 하혈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용산종합병원과 삼성의료원을 들러 확인을 하고는

절대안정을 위해 휴직을 했다.

화실실도 최단거리로 해야 하고

이동거리를 최소화해야 한단다.

 

그런 몸으로 추석명절도 지냈다.

나중에 생각했지만 참 아찔한 일이다.

딱 이맘때이다.

 

하루는 이노무 마누라 자다가 일어나더니

뚤레뚤레 하다가

팔짝 뛰어 짝하니 모기를 잡는다.

참 나~~

순식간이다.

본능적이다.

천부적이다.

 

결국 그 영향이었던지

또 다시 피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에 병원으로 이송하고

수술해 애 낳고...

그 놈 생일이 몇일전에 지나갔다.

 

아여간에 마눌은 모기를 참 잘 잡는다.

찾기도 잘 찾고

손뼉을 쳐야 하는 타이밍도 잘 잡고

결단력도 빠르다.

눈도 좋다.

양쪽 눈 모두 지금은 나빠졌다고 하는데 1.5란다.

옛날에는 아마도 2.0 정도 됐는가보다.

 

덕분에

나에게 시비거는 모기들에 대해서도

가끔 복수를 청부한다.

오늘도 처절한 응징을 부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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