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재개발·재건축 비리는 주로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발생했으나 이번 수사에서는 사업 과정 전반에 걸쳐 돈이 오간 것으로 나타났다.
적발된 127명은 시공사와 협력업체 임직원 59명, 뇌물을 받은 재개발·재건축조합 간부 38명, 기타 30명이다.
▽일반 조합원들에게까지 돈 세례=서울 성북구 돈암6구역 재개발 사업의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던 지난해 말 이수건설 정모(구속 기소) 상무 등 2명은 ‘OS(아웃소싱)’라고 불리는 홍보요원을 둔 컨설팅업체를 통해 조합 추진위원과 조합원 270여 명에게 3억 원을 나눠 줬다. 조합원 투표로 시공사가 선정되기 때문에 조합원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 포섭에 나선 것.
40대 여성이 주축을 이룬 홍보요원 60여 명은 시공사 선정을 앞둔 한 달간 집중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핵심 멤버 7명은 이수건설에 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은 조합원들을 매일 찾아가 10만 원씩을 건넸다. 돈 봉투를 전달한 뒤에는 확인 차원의 ‘사인’까지 받았다.
돈을 전달하다가 ‘우군’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조합원들에게는 돈 봉투 제공을 중단했다. 돈을 가장 많이 받은 조합원은 한 달여 동안 370만 원을 받았다. 이 같은 돈 세례를 통해 이수건설은 시공사로 선정됐다.
▽조합 간부는 돈 먹는 하마=서울 서대문구 대현1구역 주택재개발조합 조합장 유모 씨와 고문 변호사 김모 씨 등 4명은 2004년 2, 3월 중소 건설업체 대표 박모 씨가 600억 원짜리 조합 상가를 270억 원에 사도록 도와주고 조합분쟁을 해결해 준다는 명목으로 박 씨에게서 현금 10억 원과 90억 원짜리 당좌수표 등 총 110억 원을 받았다.
이들은 박 씨에게서 받은 현금 10억 원을 박스 4개로 나눠 골목길에서 받아 차 트렁크에 싣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기업 윤모 부장 등 3명은 2004년 7∼9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원재건축조합 사업을 통해 받은 아파트 분양대금 가운데 6억 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한 뒤 조합장 이모 씨에게 “사업 편의를 봐 달라”는 청탁과 함께 3억5400만 원을 줬다.
▽사업 단계마다 비리=2003년 7월부터는 시공사와 조합 사이의 유착 비리를 막기 위해 사업시행 인가 이후에 시공사를 선정하도록 하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건설 회사들은 사업의 초기 단계인 조합설립추진위원회 구성 때부터 홍보요원을 동원해 돈을 뿌린 것으로 밝혀졌다.
이수건설은 돈암6구역 재개발 사업의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에 시공사 선정을 위한 사전 준비자금으로 15억 원을 제공했다.
▽뿌려진 뇌물만큼 분양가는 올라=이번 수사에 참여한 차동언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은 “뇌물이나 로비자금은 결국 공사원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이런 비용이 조합원들에게 전가돼 분양가격이 올라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 재개발 공사와 관련해 건설 회사들이 쓰는 홍보비용은 60억∼70억 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수건설이 돈암6구역 재개발 사업에 들어가는 총공사비 990억 원 가운데 지금까지 홍보비용으로 지출한 공식 자금만 22억 원이었다.
검찰은 이수건설에 대해선 건설교통부에 ‘건설업 등록말소 또는 1년 이내의 영업정지’를 명령하도록 통보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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